01 중동을 이해하려면 지도부터 봐야 한다
세계 지도에서 중동을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국경선이 너무 직선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요르단의 국경. 이집트와 리비아의 국경, 예멘과 오만의 국.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이 수백 킬로미터 이어진다. 중동 지역 국경 전체 연장선의 52%가 기하학적 국경 획정의 산물이다.
산맥도, 강도, 민족 분포도가 아니라, 누군가 책상 위에서 자를 대고 그은 선이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국경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면,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갈등의 뿌리가 보인다.

출처 : iStock
02 600년 제국이 무너지다 – 오스만의 해체
1299년부터 시작된 오스만 제국은 600년 넘게 중동 전체를 지배했다.
전성기의 오스만은 오늘날의 터키,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일부, 발칸반도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이슬람 세계의 정치·종교적 중심이었고, 수백 개의 민족과 언어, 종파가 한 제국 아래 공존했다.
그런데 이 제국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9세기 들어 산업혁명으로 급성장한 유럽 열강에게 오스만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들을 정도로 쇠락이 가팔라졌다. 그리고 결정타가 날라왔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독일 편에 서서 패전하면서 중동의 영토 대부분을 상실했고, 이 영토는 영국과 프랑스에게 넘어갔다.
600년 제국이 한순간에 해체됐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아랍인들의 독립 국가가 아니었다.

출처 : 세계일보
03 세 가지 약속, 세 가지 배신
1차 대전 중 영국은 중동을 상대로 서로 모순되는 약속을 세 곳에 동시에 했다.
첫번째 약속 – 아랍에게.
아라비아반도 서부 헤자즈 지역 메카의 태수 후세인 빈알리가 영국의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에게 편지를 보냈다.
오스만에 맞서 싸우면 전쟁 후 아랍 독립 왕국을 세워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아랍인들은 이 약속을 믿고 영국 편에서 용맹하게 싸웠다.
두번째 약속 – 프랑스에게.
영국은 같은 시기 프랑스와 비밀 협상을 벌였다.
1916년 영국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가 서명한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중동의 미래를 영국과 프랑스가 나눠가진 거래였다.
아랍에게 한 독립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세번째 약속 – 유대인에게.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선언(밸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이미 아랍에게 독립을 약속했던 바로 그 땅이었다.
전쟁이 끝났다. 1920년 산레모 회의와 세브르 조약에 의해 사이크스-피코의 분할안이 실현됐다.
후세인이 통일 아랍 왕국의 영토로 삼고자 했던 레반트와 아라비아반도는 쪼개졌다.
아랍인들은 세 번의 약속 중 하나도 지켜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이 협정을 “역사적 배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04 자로 그은 국경, 그 안에 갇힌 사람들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의 지도를 새로 그렸다.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가 맡았다. 이라크, 팔레스타인, 요르단은 영국이 맡았다. 아라비아반도 중부는 사우드 가문이 세운 왕국, 즉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됐다.
문제는 이 국경들이 철저히 유럽 열강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그어졌다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같은 부족, 같은 종파로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다른 나라 국민이 됐다.
반대로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집단이었던 사람들이 한 국경 안에 억지로 묶였다.
이라크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이라크 안에는 수니파 아랍인, 시아파 아랍인, 쿠르드족이 섞여 있다. 이들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
언어도, 종파도, 역사적 정체성도 다르다. 영국이 석유가 매장된 모술 지역까지 한 국경 안에 묶어 두면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나라다.
레바논도 마찬가지다. 마론파 기독교인, 수니파, 시아파, 드루즈파가 한 나라 안에 뒤섞여 있다. 프랑스가 기독교 세력을 우대하며 설계한 국가 구조는 독립 이후 수십 년간 내전의 씨앗이 됐다.

출처 : 일요저널
05 석유가 발견되다 – 중동의 운명을 바꾼 한 방울
1930~1940년대, 중동의 지형을 다시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석유가 발견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석유가 중동 땅 아래 묻혀 있었다.
유럽 열강이 중동을 장악하려 했던 이유가 지정학적 위치 때문만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자료 : 오피니언뉴스
석유는 중동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만들었다.
텅 빈 사막에 왕정이 세워졌다. 아무것도 없던 나라들이 하룻밤 사이에 세계 경제의 핵심 공급지가 되었다.
그리고 서방의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석유 이권을 둘러싼 서방 기업들과 중동 왕정 간의 거래가 시작됐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안보 동맹을 맺었다.
영국은 이란 석유를 국유화하려는 모사데그 총리를 1953년 CIA와 함께 쿠데타로 축출했다.
중동의 석유는 이 지역을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만든 동시에, 외부 세력의 끊임없는 개입을 불러오는 저주가 되었다.
06 독립 이후 – 왕정과 독재, 그리고 민중의 소외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물러나면서 중동 국가들은 형식적인 독립을 얻었다.
하지만 식민 지배자가 물러난 자리를 현지 권위주의 엘리트가 차지하면서 국민은 권력으로부터 여전히 소외됐다.
크게 두 가지 체제가 나타났다.
첫번째는 왕정.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쿠웨이트, 요르단, 바레인은 왕족이 석유 수익을 독점하고, 종교 권위로 통치를 정당화 하는 구조이다. 서방은 이 왕정들과 안보 협력을 맺으며 묵인했다.
두번째는 세속 군사 독재. 이집트의 나세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시리아의 아사드 가문은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권력을 잡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철권 통치를 유지했다.
두 체제 모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국민이 없었다. 석유 수익은 왕족과 엘리트에게 집중되었고, 일반 국민은 정치에서 배제됐다. 이 구조적 소외가 쌓이고 싸여 2010년대 ‘아랍의 봄’으로 터져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혁명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내전과 혼돈으로 이어졌다.
07 이스라엘 건국 – 중동의 가장 뜨거운 불씨
1948년, 중동에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생겼다.
이스라엘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국가를 세웠다.
1917년 밸푸어 선언, 그리고 국제사회의 지지가 뒷받침됐다.

출처 : 대학신문
아랍 세계는 즉각 반발했다.
이미 수백 년 간 그 땅에서 살아온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 이스라엘 건국은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건국 다음날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겼다.
이후 수십 년간 중동 전쟁은 반복됐다. 1956년, 1967년, 1973년.
이스라엘은 매번 살아남았고, 오히려 영토를 넓혔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중동 전체의 화약고로 남아있다.
LEV’s Insight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100년 전 영국과 프랑스가 자로 그은 국경,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 석유를 둘러싼 외세의 개입, 독립 이후에도 이어진 권위주의 통치 – 이 모든 것이 층층이 쌓여 지금의 중동을 만들었다.
중동을 이해하려면 뉴스 헤드라인이 아니라 이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
오늘의 전쟁은 어제의 지도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