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 갈등이 특별히 어려운 이유
세상에는 수많은 영토 분쟁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유독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양측 모두 각자의 시각에서 볼 때 완전히 정당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 이 땅은 디아스포라의 끝에서 되찾아야 할 역사적 귀환의 공간이었고,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는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다.
두 서사 모두 각자의 경험 안에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정당성을 가진다.
이 글을 읽을 때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왜 이 문제가 10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시각으로 접근하길 바란다.

출처 : 평화통일
02 유대인은 왜 팔레스타인 땅을 원했나 – 시오니즘의 탄생
이 이야기는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된다.
당시 유럽의 유대인들은 수백 년째 박해받는 소수자였다.
러시아에서는 포그롬(유대안 학살)이 반복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유대인 장교가 간첩으로 누명을 쓰는 ‘드레퓌스 사건’이 터졌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심화되면서 시오니즘은 유대인의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정치운동으로 부상했다.
시오니즘의 핵심 논리는 단순했다. “유대인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땅은 유대교의 성지이자 고대 유대 왕국이 있었던 팔레스타인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땅에 이미 수백년간 살아온 아랍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유대인 이주가 점차 늘어났지만, 그 땅에는 이미 아랍 주민들이 생활 기반을 이루고 있었다.

출처 : 한국미래일보
03 영국의 이중 약속 – 또 다시 배신
1편에서 다루었듯이, 영국은 1차 대전 중 아랍에게는 독립을 약속한다는 ‘맥마흔 선언’을 하고, 동시에 유대인에게는 팔레스타인에 민족 국가를 세울 수 있도록 지지한다는 ‘벨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같은 땅에 대한 두 개의 약속이었다.
영국이 물러난 뒤 유엔은 1947년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분할하는 안을 제시했다.
유대인들은 받아들였다. 아랍인들은 거부했다.
자신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땅을 외부 세력이 나눠가지는 것을 수용할 수 없었다.
1948년 5월 14일, 유대인 지도자 다비드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했다.
서기 70년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뒤 1800여낸 가까이 세계 전역으로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이 마침내 국가를 세운 것이다.
선언 다음 날,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겼다.


출처 : 뉴스원
04 나크바 – 팔레스타인의 대재앙
이스라엘에게 1948년은 건국의 해다.
팔레스타인에게 같은 해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기억된다. 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의미를 가진 ‘나크바(Nakba)’의 해이다.
전쟁으로 인해 75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피난민이 되었다.
수백 개의 아랍 마을이 파괴되거나 버러졌다.
난민들은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의 임시 캠프로 쫓겨났고, 그 중 상당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난민 캠프에서 살고 있다.
전쟁이 끝난 뒤 이스라엘은 유엔이 제시한 분할안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돌아오려 했지만 이스라엘은 허락하지 않았다.
버려진 집들에는 유대인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1948년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같은 전쟁은 고향을 잃은 재앙이었다.

출처 : SNUAC
05 전쟁의 반복 – 1967년이 모든 것을 바꾸다
1948년 이후 중동 전쟁은 반복되었다.
그 중 가장 결정적인 건 1967년 ‘6일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단 6일 만에 이집트·요르단·시리아 연합군을 격파하고 영토를 3배로 늘렸다.
이때 점령한 땅이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시나이반도, 골란고원이다.
이 점령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분쟁의 핵심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미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은 1967년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되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게 점령지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거부했다.
안보 없이는 철수도 없다는 논리였다. 이 교착 상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출처 : 뉴스원
06 오슬로 협정 – 희망이 왔다가 사라지다
1990년대 초, 드물게 평화의 기운이 돌았다.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비밀 협상 끝에 역사적인 합의를 이뤘다.
이스라엘은 PLO를 팔레스타인의 합법적 대표로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했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세워졌다.
세계가 환호했고,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과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백악관 잔디밭에서 악수하는 장면은 역사적인 사진으로 남았다.

출처 : 동아일보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19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이스라엘 극우파에 의해 암살되었다. 평화의 상징이 사라진 자리에 강경파가 들어왔다.
1996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극우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로 당선되면서 오슬로 협정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협정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멈추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약속된 권한을 온전히 넘겨받지 못하였고, 신뢰는 조금씩 무너졌다.
2000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이 걸렬되었고,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터졌다.
오슬로가 그린 평화의 지도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07 가자지구 – 세상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
2006년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하마스가 압승을 거뒀다.
온건파 파타와의 내분 끝에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파타가 서안지구를 각각 장악하며 팔레스타인은 둘로 갈라졌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가자지구 봉쇄에 들어갔다.
20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는 가자지구는 육지, 바다, 하늘이 모두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놓였다.
물자 반입이 제한되었고, 주민들의 이동이 막혔다.
국제사회가 가자지구를 “세상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테러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팔레스타인은 집단 처벌이라고 반발했다.
그 이후, 2008년, 2012년, 2014년, 2021년에도 전쟁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며 전쟁은 반복되었다.

출처 : 동아일보
08 2023년 10월 7일 – 모든 것이 다시 바뀐 날
2023년 10월 7일 새벽,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하마스 무장 세력은 이스라엘 경찰서, 군사 기지, 민간인 정착촌과 주택, 두 곳의 야외 음악 축제를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모든 국경을 봉쇄하여 식량, 에너지, 물 공급을 차단하고 하마스 은신처로 의심되는 지역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이날 사망한 이스라엘인은 대부분 민간인으로, 약 1200명으로 추산되었다.
이스라엘의 반격은 즉각적이고 전면적이었다.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 작전이 시작되었고, 2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가자지구의 사망자는 수만 명에 달했다.
병원, 학교, 주거지가 파괴되었고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전쟁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졌다.
이 전쟁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국교 정상화가 추진되던 데탕트 국면을 하마스가 위협으로 인식해 기습 공격을 단행하면서 촉발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의 화해 무드가 하마스의 존재 기반을 위협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3편에서 다루었듯, 헤즈볼라 참전, 후티의 홍해 봉쇄, 이란의 이스라엘 직접 공격으로 이어지며 결국 2026년 미국-이란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출처 : KBS
09 해결되지 않는 세 가지 핵심 쟁점
100년의 갈등이 이어지는 이유는 세가지 핵심 쟁점이 아직도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에게 성지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수도로 선언했고,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미래 국가의 수도로 원하고 있다. 타협점을 찾을 수 없어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이다.
2) 팔레스타인 난민
1948년 이후 고향을 떠난 팔레스타인인과 그 후손은 수백만 명에 달한다. 이들의 귀환권은 팔레스타인에게 역사적 정의의 문제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유대 국가의 인구 구조와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3) 유대인 정착촌
2023년 기준 이스라엘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4,560채의 유대인 정착촌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국제법 위반이라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 가능성을 약화시킨다고 우려한다.
이스라엘은 안보와 역사적 권리를 근거로 정착촌 건설을 계속하고 있다.
이 세가지 중 하나라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두 국가 해법’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 가지 모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10 지금 어디에 있나 – 두 국가 해법의 소멸
2026년 현재, 많은 전문가들은 두 국가 해법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본다.
서안지구 전역에 확산된 이스라엘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섬처럼 분절시켜 놓았다.
이로 인해 연속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만들기 위한 물리적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자지구는 2년 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재건에만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마스는 약화됐지만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
이란 수뇌부가 무너지면서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배후 지원도 끊겼다.
하지만 그것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점령이 계속되는 한, 저항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갈등에는 악당이 없다.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이스라엘인도, 고향을 잃은 채 난민으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도 – 둘다 역사의 피해자다.
그래서 이 문제가 10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LEV’s Insight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두 민족의 생존 욕구가 같은 땅에서 충돌하는 비극이다.
1948년의 나크바, 1967년의 점령, 1993년의 오슬로 협정의 실패, 그리고 2023년 10월 7일까지 – 모든 사건이 구조적 모순 위에서 발생했다.
이란 수뇌부의 붕괴로 저항의 축이 흔들렸지만, 점령과 봉쇄라는 근본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갈등의 씨앗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의 중동은 100년 전 누군가가 책상 위에서 그은 선과,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과, 그 위에 쌓인 상처들이 만들어낸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