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저항의 축 – 이란은 어떻게 중동 전체에 손을 뻗었나

2026년 2월 28일 새벽,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 수뇌부가 무너졌다.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다수의 이란 관료들이 이 공습으로 사망했다.

수십 년간 중동을 뒤흔들어온 이란 신정 체제의 심장이 멈춘 것이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민병대, 예멘의 후티 반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중동 전역에 걸친 무장 네트워크의 종주국이었다. 이 네트워크를 ‘저항의 축’이라 부른다.

이란이 흔들리자 축도 흔들렸다.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가 구심점을 잃었고, 예멘에서는 후티가 독자 노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란은 어떻게 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네트워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자료 : CSIS


1979년 이슬람혁명 직후 이란은 사방이 적이었다.

미국은 이란과 단교하고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80년 이란을 침공했다. 걸프 왕정들은 이란 혁명이 자국으로 번질까 두려워 이라크를 지원했다.

고립된 이란이 선택한 전략은 정규군 대신 대리세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논리는 간단하다. 이란이 직접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싸우면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레바논, 이라크, 예멘, 팔레스타인에 이란의 뜻을 따르는 무장 세력을 심어두면 적들의 주변을 포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1982년 레바논 전쟁동안 이란이 레바논 시아파와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지원하면서 대리전이 시작됐다.

이란은 중동의 다른 이슬람주의 국가 및 단체들 사이에서 힘과 영향력을 얻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틀어 ‘저항의 축’이라고 불렀다.

자료 : 뉴시스

이란의 혁명수비대 산하 ‘쿠드스군’이 이 네트워크의 실질적인 관리자였다. 자금, 무기, 군사 훈련을 대리세력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저항의 축에서 가장 강력하고 조직화된 세력은 레바논의 헤즈볼라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계기로 탄생했다.

레바논 남부의 시아파 주민들이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하기 위해 이란의 지원을 받아 조직한 무장단체다.

헤즈볼라는 아랍어로 ‘신의 당(黨)’이라는 뜻이다.

자료 : 나무위키

헤즈볼라는 단순한 무장단체가 아니다.

레바논 남부에서 학교, 병원, 복지 시설을 운영하며 사실상의 국가 역할을 해왔다.

레바논 의회에도 의석을 가진 합법적인 정치 세력이기도 하다.

군사력도 막강하다. 헤즈볼라는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비국가 무장 조직 중 하나로 꼽히며, 최소 6만명의 전투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으로부터 받은 정밀 유도 미사일과 드론을 포함해 웬만한 중소 국가 군대 수준의 무기 체계를 갖추고 있다.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을 사실상 격퇴하며 중동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이란에게 헤즈볼라는 단순한 무장단체가 아니다. 레바논을 통해 이스라엘 북쪽에 항상 총구를 겨누고 있는 전략 자산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하마스는 수니파다.

저항의 축은 주로 시아파 네트워크인데, 수니파인 하마스가 왜 이란의 지원을 받을까?

하마스와 이란은 수니파-시아파 간 종파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이스라엘이라는 공통 목표로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하마스는 1987년 팔레스타인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과정에서 탄생했다.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분파에서 시작해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정치, 군사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팔레스타인 전체의 해방을 목표로 내세운다.

자료 : 나무위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 사건은 이후 헤즈볼라 참전, 후티의 홍해 봉쇄, 이란의 이스라엘 직접 미사일 공격으로 연쇄적으로 확산되며 결국 2026년 미국-이란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예맨의 후티는 저항의 축 중 가장 최근에 부상한 세력이다.

후티는 1990년대 예멘 북부 산악 지대에서 시작된 시아파 계열 자이드파 종교 운동에서 출발했다.

지도자 후세인 바드르 알딘 알후티의 이름을 따 후티라 불린다.

예멘 정부의 부패와 수니파 와하비즘 확산에 저항하며 세력을 키웠고, 이란의 지원을 받아 군사 조직으로 발전했다.

자료 : 나무위키

2014년 후티는 예맨 수도 사나를 점령하며 일약 중동의 핵심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아랍 연합군이 군사 개입에 나섰으나, 첨단 무기로 무장했지만 의욕이 없는 사우디군이 전쟁 경험이 풍부한 후티 반군에 밀려 형편없는 전투력을 보이며 패배를 거듭했다.

2023년 이후 후티는 새로운 전선을 열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명분으로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해상 물동량의 10%가 지나는 홍해가 흔들리자 글로벌 공급망과 해운 보험료가 출렁였다.

예맨 산악 지대의 무장 세력이 세계 무역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저항의 축 중 가장 덜 알려져 있지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세력이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다.

2003년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무너뜨린 뒤, 이라크는 권력 공백 상태에 빠졌다.

이란은 이 공백을 파고들어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들을 조직하고 지원했다.

이들 민병대는 IS와의 전쟁에서 이라크 정규군보다 더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하며 이라크 정치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자료 : 나무위키

이라크 민병대의 전략적 가치는 지리에 있다.

이란 – 이라크 – 시리아 –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육상 통로, 이른바 ‘시아파 초승달 벨트’가 민병대를 통해 유지된다.

이 통로가 열려 있어야 이란이 헤즈볼라에 무기와 자금을 육로로 보낼 수 있다.

2000년대에 이란은 이라크에서 미군과 싸우는 민병대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중동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저항의 축의 일부가 됐다.


2024년부터 저항의 축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2024년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와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잇따라 암살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2024년말 반군에 의해 무너졌다.

이란 – 이라크 – 시리아 –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육상 통로가 시리아 구간에서 끊겼다.

그리고 2026년 2월, 이란 수뇌부가 붕괴됐다.

당장 저항의 축이 완전히 붕괴된 것은 아니지만, 전쟁 기간에 가장 큰 세력인 후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동맹의 한계가 드러났다.

구심점을 잃은 각 세력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치 내부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후티는 예멘 내 지배력 유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라크 민병대는 이란의 지원이 끊기자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꾀하고 있다.

이란이라는 큰 우산이 사라진 자리에서, 각 세력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안정으로 이어질지, 더 예측 불가능한 혼란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저항의 축’은 이란이 40년에 걸쳐 공들여 만든 지정학적 걸작이었다.

정규군 대신 대리세력을 통해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미국의 중동 지배에 저항하고, 수니파 왕정들을 견제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2024년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참수 작전과 2026년 미국의 공습으로 이 네트워크의 심장이 멈췄다.

‘이란 없는 저항의 축’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 헤즈볼라, 후티, 하마스를 만들어낸 조건, 즉 빈곤과 점령과 소외는 이란이 사라진다고 해서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료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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