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최근 이슈
숫자만 보면 전기차 시대가 온 것 같다.
2025년 3분기 기준 글로벌 전기차 침투율은 27.3%를 기록했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승용차 4대 중 1대 이상이 전기차라는 뜻이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이 52%로 1위, 유럽 31%, 한국 21.8%, 북미 12.6% 순이다.
BNEF(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는 2025년 연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2,140만대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발표하였으며, IEA(국제에너지기구) 또한 2025년에는 2,120만대, 2026년에는 2,40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출처 : 이데일리
그런데 같은 시기, 완성차 업계에서는 전혀 다른 뉴스가 쏟아졌다.
GM은 2026년 1분기 전기차 사업 축소와 중국 사업 구조조정 비용으로 71억 달러의 일회성 손실을 기록했다. 포드는 전기차 투자 축소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195억 달러, 우리 돈으로 28조원 규모의 특별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폭스바겐 그룹은 전기차 판매 비중이 늘어났는데도 영업이익률이 4.2%까지 떨어졌다. 저마진 전기차 판매 비중 증가가 주요 원인이었다.
전기차는 팔수록 손해다.
이 역설적인 상황이 지금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현실이다.
02 왜 전기차는 팔아도 돈을 못 버나
전기차가 수익을 내기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배터리 원가.
전기차 원가의 40~50%는 배터리다.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핵심 원자재 가격은 수요가 늘어도 공급이 단기간에 늘어나기 어렵다. 광산 개발부터 정제, 셀 생산까지 최소 수년이 걸린다. 전기차 판매가 급증했던 2021~2023년, 배터리 원가도 같이 올라갔다. 업체들이 차를 팔수록 마진이 줄어드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둘째, 전환 비용.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넘어가는 건 단순히 엔진을 모터로 바꾸는게 아니다. 공장 설비를 새로 깔고, 공급망을 재편하고, 소프트웨어 역량을 새로 쌓아야 한다. 포드는 SK온과 미국 Kentucky주에 짓던 58억달러 규모 배터리 공장 용량을 35%나 줄였고, 주력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을 무기한 중단했다. 투자는 이미 나갔는데,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자 손실이 고스란히 쌓인 것이다.
셋째, 경쟁 구도.
BYD로 대표되는 중국 업체들이 완전히 다른 원가 구조로 시장에 들어왔다.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고, 수직 계열화된 공급망을 갖추고 있어 가격을 유럽, 미국 경쟁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이 커질수록, 수혜는 중국 업체들에게 집중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03 각국의 엇갈린 선택
같은 상황을 두고 각국의 대응은 완전히 달려졌다.
미국은 속도를 늦췄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고 환경 규제를 완화하면서 시장이 급격히 식었다. 세액공제 지원이 사라진 직후 GM의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3% 감소했다. GM과 포드는 하이브리드차로 전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유럽은 반대로 규제가 전기차를 강제한다. EU는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2025~2027년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1년 대비 15% 낮추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기준을 넘기면 초과 배출량 1g당 95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해왔다. 팔리든 안 팔리든, 전기차를 팔아야 과징금을 피할 수 있다. 수익보다 규제 준수가 먼저인 셈이다.
중국은 또 다르다. 정부 보조금으로 키워온 전기차 시장이 이제 내부 경쟁 과열 단계에 접어들었다. 중국 정부는 완성차 업체들에게 과도한 가격 할인 경쟁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보조금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키운 시장을 이제 수익성 중심으로 정리하는 국면이다.
결국 세 지역 모두 ‘전기차 전환’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 속도와 방식은 제각각이다.

출처 : 포스코그룹 뉴스룸
04 하이브리드의 부활, 그리고 EREV
이 혼란 속에서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건 하이브리드다.
전기차 전환에 지친 소비자들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하이브리드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충전 인프라 걱정 없이 연비는 좋고, 가격은 전기차보다 저렴하다. 2026년 1분기 유럽과 북미에서는 하이브리드 비중이 순수 전기차 비중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흐름이 있다.
EREV(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의 부상이다. 배터리만으로 주행하다가 부족하면 내연기관이 발전기 역할을 해 주행거리를 늘리는 방식인데, 순수 전기차의 충전 불편함을 해소하면서 연비도 확보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EREV와 PHEV(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가 순수 전기차(BEV, Battery Electric Vehicle) 성장세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도 완성차 업체들이 EREV를 포함한 PHEV 라인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Toyota는 오래전부터 이 흐름을 읽었다. 하이브리드 기술을 20년 넘게 쌓아온 토요타는 경쟁사들이 전기차에서 손실을 쏟아내는 동안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했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토요타의 복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GM도 수년 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다시 선보이겠다고 밝혔고, 포드는 2030년까지 글로벌 판매의 절반을 하이브리드, EREV, 전기차가 채우는 방향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한때 “하이브리드는 과도기적 기술”이라며 전기차 올인을 선언했던 업체들이, 지금은 하이브리드를 수익의 버팀목으로 삼고 있다.
05 한국 완성차와 배터리는 어디 서 있나
현대차와 기아는 이 싸움에서 비교적 영리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기차(아이오닉, EV 시리즈)와 하이브리드를 동시에 강화하는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을 일찍부터 가져갔다. 미국 시장에선 조지아 공장을 앞세워 관세 충격을 피했고, 유럽에선 규제 대응이 가능한 전기차 라인업을 갖췄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2026년 5월 기준, 중국 전기차의 한국 시장 점유율이 34%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BYD를 시작으로 지커, 샤오펑, 립모터 등 중국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안방에서도 가격 경쟁이 시작됐다.
한편, 전기차 시장이 성장을 이어가는 한 배터리 수요는 구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파워트레인이 BEV든 PHEV든 EREV든, 배터리가 들어가지 않는 친환경차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5년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대비 약 24% 증가해 처음으로 연간 1TWh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이 어느 방향으로 가든, 배터리 소재와 2차전지 공급망을 쥔 기업들에게는 기회가 이어진다.
06 전기차 전환은 결국 어디로 가나
전기차 시대는 분명히 오고 있다. 하지만 그 경로는 처음 예상과 전혀 다르다.
보조금과 규제로 억지로 당겨온 수요는, 정책이 바뀌는 순간 무너진다. 배터리 원가가 내려가지 않으면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 충전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선택을 망설인다.
결국 전기차 전환은 기술의 싸움이기 이전에 원가 구조와 공급망, 그리고 정책의 싸움이다. 이 세가지를 동시에 잘 다루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장이 되었다.
LEV’s Insight
전기차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돈을 버는 곳과 잃는 곳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배터리를 직접 만들고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중국 업체들이 원가 우위를 가져가는 동안, 미국과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전환 비용의 후폭풍을 맞고 있다.
하이브리드와 EREV의 부활은 ‘전기차 올인’이 얼마나 위험한 전략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가장 먼저 전기차를 판 회사가 아니라, 어떤 파워트레인이 주류가 되든 배터리 공급망을 쥔 회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