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같은 신을 믿는데 왜 싸우나
이슬람은 하나의 종교다.
같은 경전(코란)을 읽고, 같은 신(알라)을 믿고, 같은 성지(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그런데 이 하나의 종교가 1400년 동안 둘로 나뉘어 싸워왔다.
오늘날 전 세계 무슬림의 약 85%는 수니파, 15%는 시아파다.
숫자로 보면 소수처럼 보이지만, 시아파가 밀집한 이란, 이라크, 레바논, 예멘은 지금 중동에서 가장 뜨거운 분쟁 지역들이다.

출처 : 매일경제
수니와 시아의 갈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우디와 이란이 왜 적인지, 예멘에서 왜 전쟁이 벌어졌는지, 이라크가 왜 끊임없이 흔들리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이 갈등의 뿌리는 1400년 전,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됐다.
02 분열의 시작 – 632년, 후계자 문제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은 632년, 이슬람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무함마드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다. 정치 지도자이자 군사 최고 사령관이었다.
그가 죽자 공동체 전체가 흔들렸다.
누가 다음 지도자(칼리프)가 되어야 하는가.
두 갈래의 주장이 충돌했다.
한쪽은 “무함마드의 혈통이 이어야 한다“고 했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정통 후계자라는 주장이었다.
이들이 훗날 시아파가 된다. 시아(Shia)는 아랍어로 ‘알리의 편’이라는 뜻이다.
다른 쪽은 “공동체가 선출한 지도자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무함마드의 측근들이 합의로 지도자를 뽑자는 주장이었다.
이들이 수니파가 된다. 수니(Sunni)는 ‘무함마드의 관행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결국 알리가 아닌 아부 바르크가 초대 칼리프가 됐다.
알리는 한참 뒤인 4대 칼리프로 즉위했지만, 661년 암살당했다.

출처 : MBC뉴스
03 카르발라의 비극 – 갈라진 상처가 굳다
분열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 사건이 있다. 680년 카르발라 전투다.
이 전투 이후 수니와 시아의 분리가 결정적으로 굳어졌다.
알리의 아들 후세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아파의 지도자(이맘)였다.
그는 당시 칼리프 야지드의 통치에 저항하다가 이라크 카르발라 평원에서 72명의 추종자와 함께 수니 군대에 포위됐다.
열흘간의 포위 끝에 후세인과 그 일행은 전원 학살됐다.
이 사건은 시아파에게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정의로운 지도자가 불의한 권력에 의해 순교당한 사건으로 각인됐다.
매년 이슬람력 1월(무하람월)이 되면 시아파 신자들이 카르발라 전투를 추모하며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아슈라’ 의식을 치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르발라는 종교적 분열을 감정적 상처로 바꾼 사건이었다. 1400년이 지나도 이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04 1979년 – 잠자던 갈등이 깨어나다
수니와 시아의 갈등은 수백 년간 존재했지만, 현대 중동의 종파 전쟁을 직접 촉발한 건 1979년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이란이나 사우디 모두 중동 내의 대표적인 친미 왕조들이 정권을 쥐고 있었으며, 양국이 원수지간이 된 것은 1979년 이란의 종교지도자였던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신정 정권을 수립한 이후부터였다.

호메이니는 단순히 이란의 지도자가 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란 혁명의 불꽃을 중동 전역으로 퍼뜨리려 했다.
왕정과 독재 정권들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혁명 국가를 세우자는 것이었다.
사우디에게 이것은 생존의 위협이었다.
시아파가 주도한 이란 혁명의 열기를 이어받아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국내 시아파가 반란을 일으켜 중앙정부를 흔들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9년 카티프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사우디의 석유가 집중된 동부 지역에는 시아파 주민들이 밀집해 있다.
이란 혁명이 이 지역으로 번지면 사우디 왕정은 끝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한다는 혁명 이념을 내걸고 이란이 중동 무슬림 세계를 혼란과 극단주의의 늪으로 빠뜨렸다고 생각한다.
출처 : 일요저널
05 중동의 냉전 – 사우디 vs 이란
1979년 이후 중동은 사실상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수니파 진영(사우디 주도) :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 이집트 요르단, 파키스탄 일부 –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현상 유지를 원한다.
시아파 진영(이란 주도) : 이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시리아 아사드 정권 –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을 공유하며 기존 중동 질서에 도전한다.
이 분쟁은 ‘신중동 냉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및 주변 지역의 영향력을 두고 주로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자료 : 제주소통투데이
예멘에서는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과 사우디가 지원하는 정부군이 10년 넘게 싸웠다.
현재 북예멘을 장악한 후티 반군은 이란의 후원을 받는 시아파이고, 아덴으로 피난한 수니파 하디 정부를 후원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로, 사실상 시아파 이란과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대리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라크에서는 2003년 미국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권력 공백이 생겼다.
수니파 독재가 무너지자 다수파인 시아파가 집권했고, 소외된 수니파의 불만이 IS(이슬람국가) 발호로 이어졌다.
이란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를 통해 이라크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수니파 반군과 아사드의 시아파 계열 알라위 정권이 내전을 벌였다. 이란과 헤즈볼라가 아사드를 지원했고, 사우디와 터키는 반군을 지원했다.
06 수니파의 내부 균열 – 와하비즘과 무슬림형제단
수니파가 단일하게 뭉쳐있는 건 아니다.
수니파 안에서도 심각한 균열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와하비즘이다.
극보수적인 와하비즘과 수니파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류 문화를 장악하고 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가지고 이 사상을 전 세계로 퍼뜨리고 있다.
알카에다, IS 같은 극단주의 단체들은 모두 이 와하비즘의 극단적 변형에서 나왔다.
또 다른 균열은 무슬림형제단이다.
이집트에서 출발한 이 정치·종교 운동은 선거를 통한 이슬람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한다.
사우디와 UAE는 이를 위험한 혁명 세력으로 규정하고 테러 단체로 지정했다.
같은 수니파이면서도 왕정과 공화주의 이슬람 세력이 충돌하는 구도다.
수니 vs 시아의 대결이 중동의 ‘큰 분열’이라면, 수니 내부의 균열은 그 위에 얹힌 ‘작은 분열’들이다.
07 지금은 어떻게 됐나 – 2026년의 현재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이란이 극적으로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40년 넘게 이어온 적대 관계에 해빙 무드가 찾아왔다.
하지만 2026년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상황은 다시 뒤집혔다.
이란 수뇌부가 붕괴되고 ‘저항의 축’ 네트워크가 흔들리면서, 중동의 종파 균형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이란이 약해진 지금, 사우디는 중동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할 기회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란의 공백이 또 다른 혼란을 낳을 수도 있다.
이라크, 레바논, 예멘에 퍼져 있는 시아파 세력들이 이란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채 각자도생의 길로 흩어질 경우,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
1400년 된 갈등은 어느 한쪽이 사라진다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다. 구심점이 무너지면 새로운 구심점이 생겨나고, 싸움은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
LEV’s Insight
수니와 시아의 분열은 단순한 종교 다툼이 아니다.
누가 이슬람 세계의 정통 권력을 쥘 것인가를 둘러싼 1400년짜리 정치 투쟁이다.
사우디와 이란이라는 두 나라가 이 갈등의 현대판 주인공이 되면서, 중동 곳곳이 두 나라의 대리전 무대가 됐다.
2026년 이란 수뇌부의 붕괴는 이 균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중동의 새 질서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 구심점이 사라진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운 권력이 채워진다는 것이다.